제주전통음식 전문가 ⎯ 송심자 로컬
삶으로 익힌 제주의 전통을 전합니다
쓸고 닦으며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2월 이달의식재료인 ‘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 전통 음식인 ‘빙떡’으로 이어졌습니다. 메밀전병 안에 무채를 넣어 돌돌 마는 음식. 제주에서는 흔한 간식이자, 동시에 제사상에도 자주 오르는 음식이죠.
제주의 전통 음식은 독특한 제사 문화, 식개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설 명절을 앞둔 시점. 성읍 민속마을의 전통 음식 전문가 송심자 로컬을 찾아 제주 전통 음식과 식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어요.
마당에 줄지어 놓인 장독들,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게 닦인 옛 그릇과 물건들에서, 제주 전통 음식과 문화를 쌓아온 시간의 결이 느껴졌습니다.
"육지는 그 환경에 맞게 제삿상이 나온 거고, 우리는 우리 환경에 맞게 나온 거예요. 전통 음식과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환경과 역사적인 맥락을 같이 알아야 이해가 돼요."
부엌에서 불을 떼고, 떡을 찌고, 상을 차리던 날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제주 전통 문화. 그 시간과 가치를 간직하고 전달하는 송심자 로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구두 벗고 성읍으로
선생님은 성읍에서 계속 살아오신 건가요?
원래 친정은 서귀포예요. 스물 둘에 초등학교 교직 생활을 하면서 오게 됐어요. 성읍은 표선에서 8km 정도 올라와 있는 중산간 지역이에요. 포장도 안 된 돌밭길이었어요. 그 때는 ‘미스’ 때니까 구두를 신잖아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표선에서 내려 운동화로 갈아 신고 걸어 올라왔지. 와 보니까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고, 말 그대로 오지였어요.
여기서 남편 분을 만나 정착하게 되신 거군요.
그 당시에는 성읍에 기관이라는 게 학교밖에 없었어요. 뭐든 조그마한 행사만 있으면 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했어요. 이 집이 1970년에 지어졌는데, 집들이를 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한 거죠. 결혼하기 전에 나는 이 집을 처음 본 거예요.
그때는 시숙부님 식구들이 여기 살고 있었고, 시할머님이 계셨어요. 할머니의 소원은 딱 하나였어요. 손자 장가 가는 거 보고 죽는 거. 동네 사람들한테 “저 학교 선생님 나 손자 며느리 할 거니까 연결 해달라” 하고 친척들한테 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나고, 결혼을 해서 이 집에 살게 됐죠.
결혼 이후 삶은 어떠셨어요?
시부모님이 학교 생활을 그만두라고 계속 압력을 넣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학교 일 그만두고 할머니를 모셨어요. 그때부터 제사, 명절을 시작했어요. 내가 스물세 살이었고, 할머니는 여든여섯이었어요.
나는 그전까지는 집에서 밥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공부한다고 밥 같은 건 별로 해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추석, 설, 단오까지 1년에 제사 차리는 게 열 번쯤 됐어요.
그 많은 제사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는 불을 떼서 밥하고, 집에서 떡도 하고, 모든 음식을 했으니까요. 도저히 견뎌내지를 못하겠어서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아기 아빠가 ‘할머니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고 나를 설득했죠.
어쨌든 할머니는 101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가 오래 산 게 여기를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는 뜻이었나 싶기도 해요. 할머니한테 배운 옛 음식들이 차차 몸에 익어가면서 공부가 됐어요.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신다고요.
지금도 전통 음식, 인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독학하고, 강의도 쫓아가서 들어요.
제주 음식을 설명하려면 육지 음식도 알아야 되고, 양반 음식, 평민 음식 다 알아야 돼요. 그래야 설명이 돼요. 제주 음식만 이야기하면 얘기가 막혀.
집안 곳곳이 박물관 같기도 해요.
내가 원래 역사를 좋아하기도 했고, 최신식 물건보다도 옛날부터 쓰던 의미있는 물건을 잘 간직하려고 해요. 처음으로 샀던 텔레비전이나 전화기도 갖고 있죠.
할머니가 쓰던 그릇들, 친정집에서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들도 다 모았고요. 플라스틱 그릇이 처음 나오니까 동네 분들이 옛 그릇들을 그냥 바꾸더라고요. 플라스틱은 깨지지도 않고 편하니까. 나는 그게 너무 아까워서, 값을 줄 테니 나한테 팔아달라 했어요. 그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 그릇이나 항아리 같은 것들까지 모으기 시작했어요. 수십 년에 걸쳐 다 모아둔 거예요.
제사 나눠 먹는 날
제주에서는 제사 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까지 모이는 잔치였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사 끝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친척들, 조무래기 애들까지 왔지. 제사 하는 날은 가면 쌀밥 먹고, 고기 얻어먹는 날이었거든요. 어릴 적에는 학교 가면 제사 있는 집 아이가 대장이었어요. “오늘 너네 집 식개(제사)라?” 하면서 떡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몰려들었죠.
제사에 가면 먹을 걸 나눠주나요?
제사 끝나면 ‘식개반’이라고 해서, 한 사람에 하나씩 골고루 음식을 나눠줘요. 남녀노소 똑같이 나누는 게 특징이에요. 백 살 노인이든, 아기든, 식개반은 똑같아요. 떡이 많으면 하나씩 놓고, 적으면 잘라서라도 골고루 나눠요. 어른이라고 한 점 더 주거나 큰 거 주거나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돼지고기 적도 ‘보말적’이라고 했어요. 보말만큼 작게 만든 거예요. ‘동박적’이라고도 해요. 동백씨만큼 작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재료가 많지 않으니까 골고루 주려면 작게 만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몇십 개를 만들어서 똑같이 나눠요.
제주의 제사를 한다는 건
육지와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다고 보세요?
육지는 수직 문화예요. 양반과 상민, 등급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었잖아요.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 집 구조까지 정확하게 구분이 돼 있었어요.
근데 제주는 수평 문화예요. 양반도 없고 상민도 없어요. 약간의 토호세력이나 부잣집이 있기는 해도, 정확하게 나뉘는 수직 구조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제주 속담에 “나 오몽해질 때까지는 새끼밥 안 얻어먹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자식 밥 안 얻어먹고 내가 해 먹는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독립심이 강하기도 해요.
옛날 설 명절 풍경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우리집에는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줄을 섰어요. 할머니가 세배를 받으시면, 나는 손님에게 오메기술이나 골감주를 따라 드렸어요. 물론 그 술도 다 직접 만들었죠.
가장 기본으로 했던 게 오메기술이에요. 오메기술은 좁쌀로 술떡을 만들어 발효시키는 거예요. 위에 둥둥 뜬 맑은 부분을 걸러내서 청주로 쓰고, 밑에 가라앉은 건 막걸리, 탁주가 돼요. 술 드시는 남자분들한테는 그 청주를 드렸어요. 술을 안 드시는 분이나 여자분들이 오시면 골감주를 드리고요.
골감주는 어떤 거예요?
‘골’이라는 건 ‘엿기름’이에요. 그걸로 감주를 만드는 거예요. 쌀이 둥둥 뜨는 감주인데, 식혜하고는 전혀 달라요.
할머니가 청동 화로에 숯불을 살려, 주전자에 골감주를 데웠어요. 골감주는 알코올이 없거든. 따뜻하게 하면 정말 맛있어요.
그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설 지나고 열흘까지 새뱃손님을 받고 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됐지. 근데 그때 그렇게 고되게 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떡과 채소에 숨은 의미
제사 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일단 제주 떡이 육지와는 굉장히 달라요. 예전에는 쌀이 귀해서, 좁쌀가루나 메밀가루 같은 잡곡으로 떡을 만들었어요.
제사에 올리는 이 떡은 ‘곤떡’이라고 하는데, ‘곤’이라는 건 ‘곱다’, ‘고운’이라는 뜻이에요. 거무튀튀한 잡곡떡을 하다가 쌀로 만들면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하얗잖아요.
아무래도 제주는 쌀농사가 어렵기 때문이겠죠?
제주는 논농사가 거의 안 되니까요. 쌀떡이나 쌀밥을 먹게 된 것도 1970년대 이후지.
옛날에는 ‘고달떡’이라고 해서 시루떡을 할 때 밑에는 감자가루나 좁쌀가루를 넣고 맨 위에만 쌀가루를 살짝 얹기도 했어요. 눈 온 것처럼. 위에서 보면 쌀떡인데 밑으로 보면 잡곡떡이에요. 그만큼 쌀이 귀했어요.
떡의 모양이 다 다른데, 의미가 있는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다섯 가지 종류가 올라갑니다.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거예요.
맨 아래 시루떡은 ‘우주’, 그 위의 사각 떡은 ‘흙과 땅’을 나타내요. 세번째는 ‘솔변’이라고 하는데 솔잎으로 쪄서 만든 떡이라는 뜻이고, 다른 말로는 ‘반착 곤떡’이라고도 해요. ‘반착’이라는 건 ‘반쪽’이라는 뜻이고, 달을 나타내요. 그리고 위에 ‘해’를 나타내는 ‘절변’이 있고, 맨 위의 떡은 ‘별’을 나타냅니다. 이 다섯 가지가 기본이에요. 각각의 모양을 내기 위해서 틀로 찍어내요.
제주 제사상에 올라가는 채소나 과일은
어떤 특징이 있었나요?
제사에 올리는 채소는 ‘삼채’라고 해요. 산에서 나는 ‘산채’, 텃밭에서 나는 채소, 그리고 집 안에서 키우는 ‘가채’. 산채는 고사리가 대표적이고, 텃밭 채소는 호박이나 무, 그 계절에 나는 것들이에요. 가채는 집 안에서 키우는 건 콩나물 같은 채소예요.
과일은 굉장히 귀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댕유자만 올렸어요. 그마저도 썩어서 없다거나 하면, 가지를 잘라 과일 대신 올리기도 했었고. 옛날에 어려울 때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어떤 과일이든 다 올리죠. 복숭아만 안 올리면 돼.
복숭아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옛날 전설에 따르면,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신이 복숭아나무 때문에 죽었다고 해요. 그래서 복숭아가 있으면 신들이 무서워서 못 들어온다는 거예요. 복숭아나무 가지로 귀신을 쫓는다는 말도 거기서 나온 거고요. 제사상은 신이 들어와서 드셔야 되잖아요. 그런데 복숭아를 올리면 신이 못 들어온다고 믿었던 거죠. 그래서 복숭아는 절대 올리지 않아요.

‘고사리하고 메밀만 있으면 제사를 해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고요.
할머니가 옛날에 ‘우리 젊을 땐 고사리하고 모물고루(메밀가루)만 있어도 식개 해 먹주’라고 했지.
고사리는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기본으로 올려야 하는 거예요. 제사 음식을 지고 가야 될 ‘지게’ 역할을 하거든요. 모양이 세 갈래로 올라오잖아요. 여기 내려오지 못한 저 세상, 하늘에 있는 사람들한테 “야, 나 오늘 어디 가서 먹고 왔다, 이거 맛 좀 보라.” 그렇게 전해주는 역할이에요.
그리고 누름전이라는 것도 있어요. 고사리를 자르고 계란을 입혀 부친 사각형 모양의 전이에요. 누름전은 음식을 싸서 가는 보따리 역할을 해요.
지역에 따라 상차림도 달랐나요?
서귀포 친정집에서는 소고기 적을 굉장히 크게 해서 올렸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소고기 적을 안 하고 돼지고기만 올리더라고요.
또 해안 쪽에는 소라나 문어 같은,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많이 올립니다. 그런데 여기는 중산간이잖아요. 바다 것이 없으니까 그 대신 꿩을 올렸어요. 이런 식으로 지역에 따라 상에 올리는 것이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전통을 잇는 마음
선생님에게 제주 전통 음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전통 음식은 오랜 시간 쌓인 노하우예요. 우리는 몸이 저울이고, 몸이 온도계예요. 요즘은 레시피가 너무 잘 나와 있어서, 그것만 있으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쌀가루 5컵에 물 2컵을 넣으라고 하면 그대로 하면 되겠죠.
근데 사람 손에서도 온기가 나오잖아요. 여름이냐 겨울이냐, 추운 데서 하느냐, 보일러 켜놓은 데서 하느냐, 이런 것에 따라 다 달라져야 해요. 온도계를 안 대도 손만 대보면 이게 됐다, 안 됐다 아는 거, 이런 노하우는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요즘 사람들은 전통 음식 체험을 오더라도, 만드는 것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해요. 예를 들어 빙떡을 만든다고 하면, 요리법만 얘기하면 안 돼요. 왜 제주에서 메밀이 발달했는지, 메밀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밀이라는 말도 씨앗에 모가 나서 ‘모밀’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 사람들이 듣지요. 그래서 나를 또 찾아주는 것 같아요. 떡 하나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에서부터 재료, 역사, 문화 이야기까지 연결해서 설명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남들이 안 하는 거, 그걸 할 때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음식과 관계된 것들뿐만 아니라, 옛날 농기구나 멍석 같은 것도 따로 모아두고 있거든요. 이걸 한 곳에 모아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내가 일흔여섯인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초조해져요. 한 공간에 잘 정리해두고, 직접 만들어서 맛도 보게 하고, 전통 음식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전통 음식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불을 떼고, 옛날 솥에다가 고레(맷돌) 굴리면서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내 꿈이에요.
대화를 마치고 집 뒤편의 100년 된 전통 부엌을 둘러보았어요. 오래된 그릇과 농기구, 조리도구들이 아직도 쓸 수 있을 만큼 단정하게 놓여 있었어요.
“나는 전통 음식을 한다는 게 옛날 재료, 옛날 방식, 옛날 그릇, 이 삼박자가 맞아야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반짝반짝한 그릇에 담으면 의미가 없어요.”
송심자 로컬은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성읍마을에서 전통을 담은 그릇과 문화를 쓸고 닦고 정리합니다. 자자손손 쓸고 닦고 다듬으며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바라며-
PLACE

옛날팥죽
성읍민속마을에 위치한 곳
단팥죽, 새알팥죽, 팥칼국수를
취향껏 즐길 수 있다.
소금과 설탕이 모두 준비되어있는
센스있는 팥죽 전문점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로 130네이버 지도
제주전통음식 전문가 ⎯ 송심자 로컬
삶으로 익힌 제주의 전통을 전합니다
쓸고 닦으며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2월 이달의식재료인 ‘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 전통 음식인 ‘빙떡’으로 이어졌습니다. 메밀전병 안에 무채를 넣어 돌돌 마는 음식. 제주에서는 흔한 간식이자, 동시에 제사상에도 자주 오르는 음식이죠.
제주의 전통 음식은 독특한 제사 문화, 식개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설 명절을 앞둔 시점. 성읍 민속마을의 전통 음식 전문가 송심자 로컬을 찾아 제주 전통 음식과 식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어요.
마당에 줄지어 놓인 장독들,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게 닦인 옛 그릇과 물건들에서, 제주 전통 음식과 문화를 쌓아온 시간의 결이 느껴졌습니다.
부엌에서 불을 떼고, 떡을 찌고, 상을 차리던 날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제주 전통 문화. 그 시간과 가치를 간직하고 전달하는 송심자 로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구두 벗고 성읍으로
선생님은 성읍에서 계속 살아오신 건가요?
원래 친정은 서귀포예요. 스물 둘에 초등학교 교직 생활을 하면서 오게 됐어요. 성읍은 표선에서 8km 정도 올라와 있는 중산간 지역이에요. 포장도 안 된 돌밭길이었어요. 그 때는 ‘미스’ 때니까 구두를 신잖아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표선에서 내려 운동화로 갈아 신고 걸어 올라왔지. 와 보니까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고, 말 그대로 오지였어요.
여기서 남편 분을 만나 정착하게 되신 거군요.
그 당시에는 성읍에 기관이라는 게 학교밖에 없었어요. 뭐든 조그마한 행사만 있으면 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했어요. 이 집이 1970년에 지어졌는데, 집들이를 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한 거죠. 결혼하기 전에 나는 이 집을 처음 본 거예요.
그때는 시숙부님 식구들이 여기 살고 있었고, 시할머님이 계셨어요. 할머니의 소원은 딱 하나였어요. 손자 장가 가는 거 보고 죽는 거. 동네 사람들한테 “저 학교 선생님 나 손자 며느리 할 거니까 연결 해달라” 하고 친척들한테 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나고, 결혼을 해서 이 집에 살게 됐죠.
결혼 이후 삶은 어떠셨어요?
시부모님이 학교 생활을 그만두라고 계속 압력을 넣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학교 일 그만두고 할머니를 모셨어요. 그때부터 제사, 명절을 시작했어요. 내가 스물세 살이었고, 할머니는 여든여섯이었어요.
나는 그전까지는 집에서 밥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공부한다고 밥 같은 건 별로 해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추석, 설, 단오까지 1년에 제사 차리는 게 열 번쯤 됐어요.
그 많은 제사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는 불을 떼서 밥하고, 집에서 떡도 하고, 모든 음식을 했으니까요. 도저히 견뎌내지를 못하겠어서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아기 아빠가 ‘할머니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고 나를 설득했죠.
어쨌든 할머니는 101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가 오래 산 게 여기를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는 뜻이었나 싶기도 해요. 할머니한테 배운 옛 음식들이 차차 몸에 익어가면서 공부가 됐어요.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신다고요.
지금도 전통 음식, 인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독학하고, 강의도 쫓아가서 들어요.
제주 음식을 설명하려면 육지 음식도 알아야 되고, 양반 음식, 평민 음식 다 알아야 돼요. 그래야 설명이 돼요. 제주 음식만 이야기하면 얘기가 막혀.
집안 곳곳이 박물관 같기도 해요.
내가 원래 역사를 좋아하기도 했고, 최신식 물건보다도 옛날부터 쓰던 의미있는 물건을 잘 간직하려고 해요. 처음으로 샀던 텔레비전이나 전화기도 갖고 있죠.
할머니가 쓰던 그릇들, 친정집에서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들도 다 모았고요. 플라스틱 그릇이 처음 나오니까 동네 분들이 옛 그릇들을 그냥 바꾸더라고요. 플라스틱은 깨지지도 않고 편하니까. 나는 그게 너무 아까워서, 값을 줄 테니 나한테 팔아달라 했어요. 그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 그릇이나 항아리 같은 것들까지 모으기 시작했어요. 수십 년에 걸쳐 다 모아둔 거예요.
제사 나눠 먹는 날
제주에서는 제사 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까지 모이는 잔치였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사 끝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친척들, 조무래기 애들까지 왔지. 제사 하는 날은 가면 쌀밥 먹고, 고기 얻어먹는 날이었거든요. 어릴 적에는 학교 가면 제사 있는 집 아이가 대장이었어요. “오늘 너네 집 식개(제사)라?” 하면서 떡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몰려들었죠.
제사에 가면 먹을 걸 나눠주나요?
제사 끝나면 ‘식개반’이라고 해서, 한 사람에 하나씩 골고루 음식을 나눠줘요. 남녀노소 똑같이 나누는 게 특징이에요. 백 살 노인이든, 아기든, 식개반은 똑같아요. 떡이 많으면 하나씩 놓고, 적으면 잘라서라도 골고루 나눠요. 어른이라고 한 점 더 주거나 큰 거 주거나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돼지고기 적도 ‘보말적’이라고 했어요. 보말만큼 작게 만든 거예요. ‘동박적’이라고도 해요. 동백씨만큼 작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재료가 많지 않으니까 골고루 주려면 작게 만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몇십 개를 만들어서 똑같이 나눠요.
제주의 제사를 한다는 건
육지와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다고 보세요?
육지는 수직 문화예요. 양반과 상민, 등급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었잖아요.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 집 구조까지 정확하게 구분이 돼 있었어요.
근데 제주는 수평 문화예요. 양반도 없고 상민도 없어요. 약간의 토호세력이나 부잣집이 있기는 해도, 정확하게 나뉘는 수직 구조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제주 속담에 “나 오몽해질 때까지는 새끼밥 안 얻어먹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자식 밥 안 얻어먹고 내가 해 먹는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독립심이 강하기도 해요.
옛날 설 명절 풍경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우리집에는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줄을 섰어요. 할머니가 세배를 받으시면, 나는 손님에게 오메기술이나 골감주를 따라 드렸어요. 물론 그 술도 다 직접 만들었죠.
가장 기본으로 했던 게 오메기술이에요. 오메기술은 좁쌀로 술떡을 만들어 발효시키는 거예요. 위에 둥둥 뜬 맑은 부분을 걸러내서 청주로 쓰고, 밑에 가라앉은 건 막걸리, 탁주가 돼요. 술 드시는 남자분들한테는 그 청주를 드렸어요. 술을 안 드시는 분이나 여자분들이 오시면 골감주를 드리고요.
골감주는 어떤 거예요?
‘골’이라는 건 ‘엿기름’이에요. 그걸로 감주를 만드는 거예요. 쌀이 둥둥 뜨는 감주인데, 식혜하고는 전혀 달라요.
할머니가 청동 화로에 숯불을 살려, 주전자에 골감주를 데웠어요. 골감주는 알코올이 없거든. 따뜻하게 하면 정말 맛있어요.
그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설 지나고 열흘까지 새뱃손님을 받고 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됐지. 근데 그때 그렇게 고되게 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떡과 채소에 숨은 의미
제사 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일단 제주 떡이 육지와는 굉장히 달라요. 예전에는 쌀이 귀해서, 좁쌀가루나 메밀가루 같은 잡곡으로 떡을 만들었어요.
제사에 올리는 이 떡은 ‘곤떡’이라고 하는데, ‘곤’이라는 건 ‘곱다’, ‘고운’이라는 뜻이에요. 거무튀튀한 잡곡떡을 하다가 쌀로 만들면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하얗잖아요.
아무래도 제주는 쌀농사가 어렵기 때문이겠죠?
제주는 논농사가 거의 안 되니까요. 쌀떡이나 쌀밥을 먹게 된 것도 1970년대 이후지.
옛날에는 ‘고달떡’이라고 해서 시루떡을 할 때 밑에는 감자가루나 좁쌀가루를 넣고 맨 위에만 쌀가루를 살짝 얹기도 했어요. 눈 온 것처럼. 위에서 보면 쌀떡인데 밑으로 보면 잡곡떡이에요. 그만큼 쌀이 귀했어요.
떡의 모양이 다 다른데, 의미가 있는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다섯 가지 종류가 올라갑니다.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거예요.
맨 아래 시루떡은 ‘우주’, 그 위의 사각 떡은 ‘흙과 땅’을 나타내요. 세번째는 ‘솔변’이라고 하는데 솔잎으로 쪄서 만든 떡이라는 뜻이고, 다른 말로는 ‘반착 곤떡’이라고도 해요. ‘반착’이라는 건 ‘반쪽’이라는 뜻이고, 달을 나타내요. 그리고 위에 ‘해’를 나타내는 ‘절변’이 있고, 맨 위의 떡은 ‘별’을 나타냅니다. 이 다섯 가지가 기본이에요. 각각의 모양을 내기 위해서 틀로 찍어내요.
제주 제사상에 올라가는 채소나 과일은
어떤 특징이 있었나요?
제사에 올리는 채소는 ‘삼채’라고 해요. 산에서 나는 ‘산채’, 텃밭에서 나는 채소, 그리고 집 안에서 키우는 ‘가채’. 산채는 고사리가 대표적이고, 텃밭 채소는 호박이나 무, 그 계절에 나는 것들이에요. 가채는 집 안에서 키우는 건 콩나물 같은 채소예요.
과일은 굉장히 귀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댕유자만 올렸어요. 그마저도 썩어서 없다거나 하면, 가지를 잘라 과일 대신 올리기도 했었고. 옛날에 어려울 때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어떤 과일이든 다 올리죠. 복숭아만 안 올리면 돼.
복숭아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옛날 전설에 따르면,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신이 복숭아나무 때문에 죽었다고 해요. 그래서 복숭아가 있으면 신들이 무서워서 못 들어온다는 거예요. 복숭아나무 가지로 귀신을 쫓는다는 말도 거기서 나온 거고요. 제사상은 신이 들어와서 드셔야 되잖아요. 그런데 복숭아를 올리면 신이 못 들어온다고 믿었던 거죠. 그래서 복숭아는 절대 올리지 않아요.
‘고사리하고 메밀만 있으면 제사를 해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고요.
할머니가 옛날에 ‘우리 젊을 땐 고사리하고 모물고루(메밀가루)만 있어도 식개 해 먹주’라고 했지.
고사리는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기본으로 올려야 하는 거예요. 제사 음식을 지고 가야 될 ‘지게’ 역할을 하거든요. 모양이 세 갈래로 올라오잖아요. 여기 내려오지 못한 저 세상, 하늘에 있는 사람들한테 “야, 나 오늘 어디 가서 먹고 왔다, 이거 맛 좀 보라.” 그렇게 전해주는 역할이에요.
그리고 누름전이라는 것도 있어요. 고사리를 자르고 계란을 입혀 부친 사각형 모양의 전이에요. 누름전은 음식을 싸서 가는 보따리 역할을 해요.
지역에 따라 상차림도 달랐나요?
서귀포 친정집에서는 소고기 적을 굉장히 크게 해서 올렸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소고기 적을 안 하고 돼지고기만 올리더라고요.
또 해안 쪽에는 소라나 문어 같은,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많이 올립니다. 그런데 여기는 중산간이잖아요. 바다 것이 없으니까 그 대신 꿩을 올렸어요. 이런 식으로 지역에 따라 상에 올리는 것이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전통을 잇는 마음
선생님에게 제주 전통 음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전통 음식은 오랜 시간 쌓인 노하우예요. 우리는 몸이 저울이고, 몸이 온도계예요. 요즘은 레시피가 너무 잘 나와 있어서, 그것만 있으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쌀가루 5컵에 물 2컵을 넣으라고 하면 그대로 하면 되겠죠.
근데 사람 손에서도 온기가 나오잖아요. 여름이냐 겨울이냐, 추운 데서 하느냐, 보일러 켜놓은 데서 하느냐, 이런 것에 따라 다 달라져야 해요. 온도계를 안 대도 손만 대보면 이게 됐다, 안 됐다 아는 거, 이런 노하우는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요즘 사람들은 전통 음식 체험을 오더라도, 만드는 것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해요. 예를 들어 빙떡을 만든다고 하면, 요리법만 얘기하면 안 돼요. 왜 제주에서 메밀이 발달했는지, 메밀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밀이라는 말도 씨앗에 모가 나서 ‘모밀’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 사람들이 듣지요. 그래서 나를 또 찾아주는 것 같아요. 떡 하나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에서부터 재료, 역사, 문화 이야기까지 연결해서 설명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남들이 안 하는 거, 그걸 할 때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음식과 관계된 것들뿐만 아니라, 옛날 농기구나 멍석 같은 것도 따로 모아두고 있거든요. 이걸 한 곳에 모아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내가 일흔여섯인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초조해져요. 한 공간에 잘 정리해두고, 직접 만들어서 맛도 보게 하고, 전통 음식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전통 음식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불을 떼고, 옛날 솥에다가 고레(맷돌) 굴리면서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내 꿈이에요.
대화를 마치고 집 뒤편의 100년 된 전통 부엌을 둘러보았어요. 오래된 그릇과 농기구, 조리도구들이 아직도 쓸 수 있을 만큼 단정하게 놓여 있었어요.
송심자 로컬은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성읍마을에서 전통을 담은 그릇과 문화를 쓸고 닦고 정리합니다. 자자손손 쓸고 닦고 다듬으며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바라며-
PLACE
옛날팥죽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로 130성읍민속마을에 위치한 곳
단팥죽, 새알팥죽, 팥칼국수를
취향껏 즐길 수 있다.
소금과 설탕이 모두 준비되어있는
센스있는 팥죽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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